닮은 듯 서로 다른 두 이야기꾼의 짧지만 긴 이야기

입력 2017.06.14. 08:28 수정 2017.06.14. 08:28 댓글 0개
신정호 사랑방칼럼 북 칼럼니스트

지극히 짧은 이야기에서 긴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다.

 

많은 말을 한다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구구절절 풀어놓지 않아도 몇 마디 말로 전해지는 가슴 깊은 울림은 그 말이 담고 있는 감정과 의지를 충분히 공감할만한 준비가 되었을 때 가능해진다.

 

말하기보다는 듣기에 주목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나 조건의 변화와 같은 외부적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심장의 반응에 주목할 수 있을 때 절제된 말이 가지는 참다운 의미를 알게 된다.


여기에 잘 어울리는 문학의 흐름 중 하나가 엽편소설이 아닌가 한다.

 

엽편소설은 나뭇잎처럼 작은 지면에 인생의 번쩍하는 한순간을 포착, 재기와 상상력으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문학양식이라고 한다.

 

최근 엽편소설집을 발간한 두 명의 작가의 소설집을 만난다. 타고난 이야기꾼의 짧지만 긴 이야기들을 담은 유경숙의 ‘베를린 지하철역의 백수광부’(푸른사상, 2017)와 잘 익은 붉은 앵두 맛 같은 이야기들을 담은 안영실의 ‘화요앵담’(헤르츠나인, 2016)이 그것이다.

안영실의 ‘화요앵담’은 ‘나른한 화요일을 깨우는 새콤달콤한 앵두 맛 이야기’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짧지만 긴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 이야기들로 묶음이다.

 

아리도록 단단한 57편의 이야기가 네 가지 테마로 묶여 잘 포장되어 있다.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세월의 무게감을 적당하게 감당할 수 있는 이의 자전적 에세이를 대하듯 친숙한 이야기들이다.

 

기억 저편에 가물거리듯 존재하면서 불쑥불쑥 현실로 드러나는 추억이거나, 감정 이입된 특정 대상을 통해 잊히길 강요받았던 생의 어느 한 자락, 자신이 속한 다양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온 시간과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유경숙의 ‘베를린 지하철역의 백수광부’에는 지극히 짧은 60여 편의 이야기가 여섯 가지 테마로 분류되어 담겨 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역사드라마 한 장면을 보는 듯도 하고, 작가의 일상이 담겨 있는 듯도 싶고, 낯선 여행지에서 그보다 더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는 듯도 싶은 이야기들이다.

 

재주 좋은 이야기꾼이 자신만의 이야기보따리를 슬그머니 풀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절대 강요하거나 억지스럽게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사이 이야기가 끝나 있다.


안영실과 유경숙의 작품 속에는 무엇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강한 목적성을 내비치지 않고서도 절제된 이야기는 담아내고 싶은 감정의 깊이와 전하고 싶은 의지를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능숙하게 전달한다.

 

짧은 이야기를 짧게 읽지만 쉽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없는 긴 사색의 시간을 만들게 하고 있다. 글이 자체적인 힘을 가지는 경우가 바로 여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여름의 초입에 서 있다. 말이 많아 많은 말만큼이나 탈도 많은 세상에 긴 이야기를 접하는 것이 어렵다면 재주 좋은 이야기꾼들이 들려주는 짧지만 강한 울림이 있으면서도 따스한 온기를 전하는 이야기와의 만남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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