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고즈넉한 포충사 나들이

여행/공연

안녕하세요~~! 며칠째 비가 계속되고 있네요. 게다가 태풍까지.....ㅜㅜ

궂은 날씨라 실내 위주로 돌아다니게 되지만 오히려 비오면 운치 있는 곳도 있죠?

바로 포충사입니다. 지금 배롱나무가 예뻐서 싸복싸복 걷기 좋은 곳이에요.

물론!! 경치 뿐만아니라 역사적 의미도 있는 곳이란 사실!! 그래서 아이들과 같이 가기 좋은 곳 ^^

오매광주 기자단과 함께 포충사를 자세히 알아볼까요?

광주 남구에 있는 포충사는 임진왜란 의병장 고경명 장군의 사당이 있는 곳으로 사계절 언제 와도 좋은 곳이랍니다.

​오늘은 포충사를 산책하면서 여름이 제철인 붉게 물들은 배롱나무꽃과 고경명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고경명 장군은 누구?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계시죠?

고경명 장군은 임진왜란 의병장인 충장공 김덕령장군, 정묘호란 충민공 전상의 장군과 함께 나라에서 인정한 광주 삼충신입니다. ​그럼 포충사로 들어가볼까요?

​주차장이 꽤 넓어서 버스 수십 대가 와도 끄떡없습니다. 아마 광주에 있는 사당 중 가장 큰 주차장이지 않을까...

고경명 장군이 광주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포충사 여행은 외삼문인 충효문을 지나면서 시작해요.

포충사는 고경명 장군과 아들 종후, 인후 3부자와 같이 참전한 유팽로, 안영 등 5명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으로 고경명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순국하고 왜란이 끝난 뒤 정국이 안정되자 1601년 호남 지방의 유생들이 나라를 위해 충절을 다한 이들을 모시기 위한 서원을 지금 이 자리에 세웠어요.

2년 뒤인 1603년 박지효와 고경명 장군 후손들이 임금님에게 청해서 포충(褒忠)이라는 이름과 편액(현판)을 받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장성 필암서원과 같이 폐쇄되지 않았던 유일한 서원이었답니다.

너무 나도 아름다운 이 곳은 고경명 장군의 전시관입니다.

전시관에는 포충사우가, 고경명의 문과급제교지, 고경명 친필의 마상격문, 제봉집 등의 목판 493개 있는데요,  

정기관(正氣館)이라 이름 붙인 것은 고경명 장군의 격문과 독전의 글을 모아 만든 책이 정기록(正氣錄)이기 때문이예요.

내부로 들어가면 이런 모습! 임진년 왜군 습격에 관한 내용이 자세하게 그림과 기록으로 남겨져 있답니다. (여기에 다 쓰기엔 조금 어렵고... 또 다 알고 가면 재미없으니 자세한 내용은........ ^^)

저희가 역사 시간에 들어 본 의병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요, 왜란 발발 11일 만에 처음으로 경상도 곽재우, 정인홍, 김면, 권응수, 김해 등이 의병을 일으켰고, 전라도에서는 광주의 고경명, 나주 김천일, 해남 처영이 의병을 일으키는 등 전국에서 나라를 왜적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의병이 일어났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고경명 장군은 6천여 명의 광주와 광주 인근 의병을 모야 연합의병장이 되었죠. 

당시 의병 군으로는 최대 규모였다는데요, 이렇게 많은 의병은 모은 것은 바로 고경명 장군의 두터운 신망 때문이라고 하네요.

지금 보시는 이 그림은 금산구국혈전도인데요, 금산전투에서 왜군과 맞서 전투를 벌이다 아들 고인후, 유팽로, 안영 등과 순국하고 맙니다.

금산전투는 의병이 주축이 돼 왜군과 맞선 최초의 전투라는 큰 의미가 있는데요, 왜적으로부터 호남을 지키기 위한 첫 전투가 마지막 전투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저희가 고경명에 대해 이렇게 알 수 있는 것은 임진왜란 이후 막내아들이 과거에 급제해 그의 가문의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여 후세에 남겼기 때문입니다. 

다시 밖으로 나와 성인문으로 가볼까요?

중앙에는 고경명 장군의 초상과 위패가 있고 양 옆으로 두 아들과 유팽로, 안영이 배향되어 있어요.

의병장이지만 초상은 문신 스타일로 다른 장군들 초상과는 조금 다르더라구요. 

​걷다보면 충노비가 보이는데요, 고경명 장군의 하인이었던 봉이와 귀인이 장군이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을 모집해 담양에서 출정할 때 같이 따라나섰다고 하네요.

고경명과 둘째 아들이 금산전투에서 적군에게 부상을 당했을 때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지켰는데요.

고경명이 임종 전에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라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양반들이 못나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너희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고경명과 둘째 아들이 전사하자 봉이와 귀인은  시신을 수습해 고향으로 돌아와 장례를 지냈는데요.

다음 해 큰아들 종후 진주성 전투에 참전할 때 같이 참전하여 그곳에서 함께 전사했답니다. 후에 이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고경명의 사당 입구에 이렇게 충노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고경명 장군은 호남을 대표하는 의병장으로서의 상징성이 있어서 1980년 국가에서 대대적인 정화사업으로 현재의 신사당을 지어서 옆으로 가면 구사당이 있는데요, 모처럼 문이 활짝 열렸네요. 

올 때마다 문이 굳게 닫혀 들어가 보지 못했거든요. 구사당은 1년에 딱 한 번 4월 15일 제향행사 때만 문을 열어요.

1980년 새로운 사당이 건립되면서 문을 닫았는데요, 동재와 서재가 있고 충효당, 청사영당, 전사청, 고직사 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재와 서재, 구사당만 남아있어요.

활짝 열린 내부를 보니 위패를 모시던 탁자와 의자만 있네요.

벽에 그려진 동양화 한 점이 눈길을 끄는데 낙관도 없고 글씨도 없어 누구의 그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시 밖으로 나와 여기저기 둘러보니 제가 간 날 약간 비가 내려서 인지 풀잎도 꽃도 다 제 색을 내고 있어서 더 아름답네요. 

포충사는 의미도 의미지만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는 풍경 때문에 더 사랑 받고 있는데 지금, 배롱나무꽃이 이제 절정으로 치달을 때입니다. (취재할 때보다 지금은 훨씬 더 예쁘게 피었을거예요)

그래서!! 지금이 포충사 가기 딱 좋은 날씨랍니다.

포충사에 가서 아름다운 경치도 감상하고 충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포충사-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 포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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