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동명동에 찾아온 동남아의 향

맛집한끼

동명동은 움직이고 있다. 감각적인 레스토랑과 카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난다. 멀리서부터 찾아온 객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도 속속 들어선다. 이곳을 방문한 젊은이들의 개성만큼, 거리는 다양한 콘셉트의 가게들로 채워지고 있다.


오늘 방문할 식당도 따끈따끈한 동명동 신상이다. 쌀국수가 맛나다 하여 이미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허기는 기대로 임시충전하고, 동명동의 젊은이들 사이로 발을 내딛었다.

하얀 벽 위에 ‘한끼’ 궁서체가 진지하다. 오래된 2층집을 개조했다. 동명동은 나름 광주의 원조 부촌이니, 이런 2층 양옥집 보기가 어렵지 않다. 곧 더 많은 주택들이 이런 레스토랑으로 옷을 바꿔 입지 않을까?

6시가 채 안 된 이른 시간인데 이미 자리는 만석이다. 작은 공간이라 테이블 수는 넉넉하지 않다. 하지만 실망하긴 이르다. 다소 가파른 계단만 오르면 2층이 우리를 반길 것이니.

2층은 아래보다 훨씬 아늑하다. 큰 창문으로 동명동 고주택들의 정취(?) 감상도 가능하다. 비양심적인 더위만 지나간다면 야외 테라스에서 먹는 식사도 멋스럽겠다. 대신 오늘은 나란히 앉아 창문 밖 풍경을 볼 수 있는 테이블의 의자를 조용히 끌어 당겼다.

동남아 사람들의 필수 운송수단, 툭툭이가 그려진 첫 장을 넘기면 적지만 알찬 한끼의 메뉴들이 등장한다. 누들과 라이스, 깐풍기와 음료수까지 지갑과 위장, 혹은 썸녀 앞 허세의 크기에 맞춰 고르면 된다.


스페셜비프쌀국수(양지 차돌고기추가), 휘시게살볶음밥, 새우연필춘권&고로케, 라무네구슬사이다가, 오늘 내 허세의 크기였다.



사실 뭔진 모르지만 ‘사이다’라는 이름만 보고 주문한 거였다. 어느새 눈앞엔 왜색이 짙은 하늘색 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점원이 간단히 뚜껑 따는 방법을 설명해주시는데, 내 이해력이 딸리는지 뇌가 당황했는지 언뜻 머릿속에 방법이 그려지지 않는다.

허나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다. 뚜껑 비닐을 터프하게 벗긴 후, 손바닥으로 사정없이 내려친다. 그럼 뚜껑에 걸려 있던 구슬이 뿅 액체 속으로 빠지면서 탄산을 막막 만들어낸다. (솔직히 쓸 데 없는데 인상적이다.) 맛은 투명한 밀키스맛이다. 상상이 가시나?

스페셜비프쌀국수는사골과 양지를 우려낸 육수에 소고기, 숙주를 곁들인 쌀국수다. 우리 입에 친숙한 프랜차이즈 쌀국수와 비교해 볼 때, 우선 바람직한 가격과 어마어마한 양의 고기에 감동한다.

하얀 양파 위에 고명으로 놓인 파와 붉은 고추가 정성스럽다. 그릇은 또 얼마나 큰지, 동행인의 머리를 감겨도 될 듯했다.

다음은 식순에 따라 국물맛을 볼 차례다. 우선 국물을 한 스푼 들이켜 본다. 시원하면서도 무겁다. 소가 아낌없이 들어가 오랜 시간 목욕한 깊이가 느껴진다. 으어어 아재의 신음소리가 목젖을 타고 절로 나온다.

쌀국수의 면발은 어떨까? 익숙한 프랜차이즈와는 미묘하게 다르다. 더 찰기가 있고, 쫄깃한 식감이다. 다르지만 이질적이지 않다. 매력적이다. 숙주도 왠지 더 아삭한 것 같다.

가격이 착해서일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프랜차이즈로 길들여진 사람들의 쌀국수맛에 대한 선입견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차별성을 꾀한다. 영리한 재간둥이다.

휘시게살볶음밥은 새우와 홍게다리살을 휘시소스로 볶아냈다. 역시 비주얼과 양은 동공을 압도한다. 굳이 발굴하지 않아도 쉽게 보이는 새우와 홍게다리살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숟가락과 비교했을 때 홍게다리살이 제법 큰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휘시소스라는 건 이름이 생소하지만 동남아 요리에선 우리네 까나리액젓처럼 쓰이는 재료란다. 짜지 않으면서도 열대의 향을 품고 있다.

이 소스로 요리한 볶음밥 역시 치명적인 중독성을 갖고 있다. 누군가 내 숟가락을 부여잡아줘야 할 만큼, 이미 배가 풀방인데도 계속 먹게 된다.

사이드 메뉴인 새우연필춘권&고로케는 흡사 홀쭉이와 뚱뚱이 같다. 이름처럼 연필 모양의 춘권은 적어도 나처럼 흑심을 품고 있진 않다. 대신 새우를 채워 부드럽고 촉촉한 맛을 냈다. 크게 인상적이진 않지만 특이한 아이디어에 기분이 좋아진다.

자고로 사람과 고로케는 속을 봐야 한다. 이 정도 듬직한 내면이면 무한신뢰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외유내강. 고작 고로케에서도 인생을 배운다.

음식을 섭취하고 있는 사이에도 손님들을 계속 들어온다. 더운 날씨임에도 야외 테라스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콘셉트와 정성이 마음을 움직인 결과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한끼는 오랜 시간 동명동의 청춘들에게 맛난 한 끼를 대접할 것 같다. 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 끼 든든하게 먹은 나는 이제 그만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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