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분위기 하나로 행복해지는 레스토랑

맛집구스토라고

우리는 모두 행복해져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단 하루는, 모두가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참 헛헛했던 올해 병신년. 이 날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행복하게 보내면 좋겠다.

그래서 준비해봤다. 역시 행복이란 먹는 게 반이니, 맛있는 레스토랑을 수색했다. 날이 날이니만큼 몽글몽글한 분위기는 필수겠다. 그리하여 발견한 오늘의 목적지! 호숫가(?)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안내해 드리려 한다.

이름은 구스토라고(Gusto Lago). 우리말로 ‘맛있는 호수’쯤 될까? 이곳에선 운천저수지를 배경으로 우아하게 식사할 수 있다. 석양이 붉게 물들고, 저수지 주위로 어둠이 스며들면 구스토라고의 조명도 하나 둘 켜진다.

식당 앞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건물 3층으로 올랐다. 주말엔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에 앉기도 힘들다. 크리스마스엔 오죽할까. 특히 저수지가 보이는 로얄석을 원한다면 미리 예약하자.

참고로 로얄석에서 보는 운천저수지의 저녁은 꽤 멋지다. 잡고 싶은 소개팅 상대와의 애프터라면, 꼭 이 자리부터 잡으시길.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닮은 조명이 밤하늘의 별처럼 천장을 수놓는다. 붉그스름한 빛 덕분에 부끄러운 내 두 볼을 들킬 걱정 덜어 안심이다. 그렇게 입구에 놓인 오래된 자전거를 타고 너의 마음속에 돌진하고만 싶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먼저 맞이하기 위해 이 식당에 왔다. 따라서 가격이 좀 있는 편이지만, 한우안심스테이크를 조심스레 지목해본다. 함께 할 파스타는 연어스테이크(크림)로 골랐다.

모든 식사 메뉴에는 스프, 샐러드, 디저트가 함께 제공된다. 크리스마스엔 역시 와인이 빠질 수 없다. 특별히 탄산이 들어간 와인에이드(red, white 선택 가능)체리에이드도 곁들이기로 했다.


프랑스 사람들이 먹는다는 달팽이 요리가 에피타이저로 나왔다. 흔치 않은 요리가 나오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선 플레이팅이 인상적이다. 체리를 향해 걸음을 멈추지 않는 달팽이들의 행진을 표현한 것일까? 구워진 달팽이는 저마다 마늘을 근두운처럼 타고 있다.


맛은 (상당히 격 떨어지는 비유이긴 하지만) 골뱅이를 구운 듯 쫄깃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느껴진다. 아마도 그 풍미의 절반은 마늘의 공이다. 접시에 흩뿌려진 소스들에 찍어 먹으면 더 좋다. 에피타이저부터 느낌이 좋다. 분위기는 더욱 농밀해진다.

술이 약한 사람도 부담 없이 음미할 수 있는 와인에이드다. 단순히 향만 넣은 게 아니라 알코올도 있으니 차를 가져온 분들은 주의하시길. 요리에 살짝 곁들이면 음식 맛이 더욱 살아날 것 같다.


또 다른 에피타이저는 단호박스프다. 단호박의 달달한 첫 맛이 몸 안으로 스며드니 기분이 좋아진다. 호수를 닮은 스프 위로 배를 띄워, 사랑을 속삭이는 그대와 나를 상상해본다. 참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스프다.

마지막 에피타이저인 샐러드. 양은 많지 않지만 추상화의 한 획을 닮은 플레이팅과, 면처럼 얇게 썰린 당근이 인상적이다. 구스토라고의 요리들은 하나 같이 예쁘다. 올리브, 견과류, 케이퍼가 곁들여지니 건강에도 좋겠다.

드디어 본 첫 번째 본 메뉴 연어스테이크 크림파스타(18,000원)차례다. 크림파스타와 연어 스테이크의 조화라니. 구운 연어와 단호박, 줄기콩들이 수줍게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조심스레 건드려본다. 부드러운 연어의 질감은 그대의 입술을 닮았다.


젓가락으로 살포시 면을 들어보았다. 어떤 식당의 파스타 면은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거나, 반대로 너무 흐물흐물한 경우가 있다. 구스토라고의 면은 정중하면서도 여유가 있는 신사 같다.

딱 알맞게 쫄깃한 면에 부드러운 연어와 올리브를 더 하니 그 조화가 기막히다.

크리스마스 디너의 메인 이벤트격, 한우 안심스테이크(40,000원)가 테이블 위에 등장했다. 역시 주연답다. 버섯, 단호박, 파인애플 등 다양한 가니쉬 사이에 살짝 몸을 숨긴 모습이라니. 과감하게 가니쉬를 걷어내고 무려 한우 안심에 경건하게 칼을 대 본다.

이 날의 선택은 핏물이 흐르는 고기를 싫어하는 동행인의 취향에 맞춘 미디움웰던이었다. 좀 더 풍성한 육즙과 부드러운 식감을 원한다면 미디움레어나 미디움이 적합하리라 본다.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겉을 바삭하게 익히는 시어링이 강한 편이니까.

구스토라고의 스테이크는 맛있게 먹는 방법 중 하나는 파인애플과 다양한 소스다. 특히 파인애플의 상큼함은 고기의 육즙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연인과의 밀당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재료들이 잘 어울리는 걸 느낄 수 있다. 참 묘하다.

다 먹을 줄 알고 일어서려니 직원이 우리를 다시 앉힌다. 알고 보니 디저트가 남았다. 아이스크림의 플레이팅을 보라. 자연스럽게 맛도 따라온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도시의 밤은 더욱 깊어졌다. 저수지 한 편에 비친 불빛 사이로 초승달이 들어왔다. 맛있는 향기와, 설레는 표정, 미묘한 정적, 이 모든 게 합쳐지니 행복하다 느낀다.

크리스마스라면 더할 것이다. 그날, 이 곳에서라면 바랐던 일이 정말로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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