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가정'집'에서 먹는 수제돈까스

맛집민들레

초등학생 때 일이다.'내 생일파티에 꼭 와주었으면 해!' 어느 날 짝꿍이 손으로 직접 쓴 초대장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것 아닌가. 부랴부랴 엄마에게 용돈을 받아 이쁘게 포장 된 연필세트를 사서 친구집으로 향했다.

나무들이 심어진 정원을 지나 현관문에 들어서니 그럴싸한 홈드레스를 입은 어머님과, 정체 모를 튀김냄새가 우릴 반겼다. 냄새의 정체는 바로 돈가스. 이날 먹은 돈가스가 내 인생 최초의 수제돈가스였다. 잘먹다 못해 아주 싹싹 핥아먹는 수준이었다.

사람이든음식이든첫인상이 가장 중요한 듯하다. 첫 돈가스에 대한 만족감 때문에 지금도 돈가스를 자주 떠올리고, 맛있다면 먼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돈가스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돈가스전문점을 찾아나섰다. 물론, 수제다.

백운동 어느 주택가 오르막길 끝에 다다르면 '민들레'를 만날 수 있다. 집중하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민들레 꽃처럼, 관심을 갖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법한 가정집이다.

수제돈가스를 먹으러 온 손님들에게 꽃길만 걷게 하려는 마음일까. 천연잔디처럼 푸르른 팰트지를 깔린 길 위에 가종 나무와 꽃 화분이 자리잡고 있다.

그 꽃길의 끝엔끼익~ 끼익~ 여닫는 소리마저 정겨운 현관문 대신 자동문으로 바꾼 정도거 빼곤, 예전 가정집 그대로인 식당이 있다.

방 세 개, 화장실 한 개. 예전 그 친구, 혹은 우리네 가정집을 닮은 구조다. 최대한 많은 인원(30석 가량)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요소요소 구석구석 테이블을 배치했다.

출입구와 매장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도록영업시간 안내표가 붙어있다. 평일에는 11:30~ 22:30(Break Time : 15:00 ~16:30)까지 영업을 하고 토요일은 11:30~15:00까지 영업을 한다.

수제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더러 일찍 끝나는 메뉴가 있고, 보통 영업시간 30~40분정도 전에는 주문을 마감한다. 또한, 아쉽게도 일요일은 쉰다.


국내산 생등심을 숙성시켜 만든 왕돈가스가 시그니처메뉴다. 거기에 일반소스가 아닌 매운양념으로 바꿀수도 있고, 매콤한 파무침을 곁들일 수도 있다. 아, 돈가스 안에 모짜렐라치즈가 듬뿍들어간 치즈돈가스가 빠지면 섭하다.

돈가스 덮밥인 가츠동과 유일한 국물요리 해물우동도 감초역할을 한다.

다년간 먹어온 수제돈가스여서 자신감있게 메뉴를 선택해 나간다. 매운맛을 선호하는 나를 위해 매운왕돈가스, 치즈 성애자 그녀를 위해 치즈돈가스, 돈가스도 좋지만 밥이 더 좋은 그를 위해 가츠동.그리고 ‘이것도 시켜보면 어때?’ 무언의 눈빛을 주고 받고나서 해물우동까지.


이렇게 주문을 하고나면 단출하지만 사장님의 손을 거친 김치, 단무지, 짠지, 양파절임 이렇게 4가지 반찬이 제공된다.

뚝딱~ 뚝딱~ 여러 요리가 한번에 조리 되는 듯, 주방에서 조리하는 소리가 매장 안을 채운다. 이윽고 맛있는 냄새가 뒤따른다. 아! 이제 나올때가 됐다.

주문한 모든 메뉴가 조리되고 나서 한번에 상이 차려진다. 우리가 주문한 돈가스요리 3종과 해물우동의 자태에 여지없이 군침부터 삼킨다.


처음으로 소개할 메뉴는 매운왕돈까스(9,500원). 수제왕돈가스를 매운양념소스로 변경하는 것이 2,000원이나 든다니 의아했지만, 유경험자의 평 자체가 좋으니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돈가스는 양식의 커틀렛식이 아닌 일식의 카츠처럼 물결모양을 이루며 튀겨져있다. 거기에 매운맛을 내는 특제소스를 얹어준다.

소스에는 표고버섯과 양파도 적지 않게 들어있어 더욱 먹음직스럽다. 돈가스에 소스가 어우러지니 마치 하트 모양인 것 같기도 하다.


제대로 매운맛을 볼 차례. 거침없이 한 입크기로 썬다. 왕돈까스답게 널찍한 돈가스가 두덩이나 나오다보니 썰어내는 데 꽤나 걸리지만, 큰 힘은 들일 필요 없이 쓱싹쓱싹 잘 썰어진다. 부드러운 육질을 기대해본다.

눅눅해지기전에 소스를 듬뿍 찍어 먹으면 입안을 화~하게 만드는 매운맛이다. 첫 맛의 임팩트는 매운떡볶이 프랜차이즈급인데, 매운맛이 계속 지속되지 않으니 계속찾게 되는 맛이다.

돈가스의 느끼함을 막고 계속 집어 먹게 만드는 역할을 매운소스가 해준다. 바삭바삭함을 좋아하는 찍먹파를 위해 소스를 별도로 제공해보는 것도 좋은 서비스가 될 것이라 예상된다.

입안이 맵다가도 적당히 뜬 밥 한 술정도면 이내 입이 깔끔해진다. 공기밥으로 추진력을 얻어 다시금 다음 조각을 입으로 가져간다. 맵기에만 집중하지 않고,매우면서 자극적이지 않는 맛이 바로 매운왕돈까스의 맛이다. 이런걸 보고 맛있게 맵다라고 부르는 것 같다.


또,밥과 함께 제공되는 일본느낌의 장국은 소소하지만 돈가스밥상에서 입안을 깔끔하게 해주는 크나큰 역할을 해낸다.

혹여나 밥으로도 매운맛을 못 잡았다면, 치즈돈가스(8,500원)의 구원등판이 필요하다. 물론, 치즈성애자라면 매운왕돈가스보다 치즈돈가스에 먼저 눈이 가겠지만 말이다.

치즈돈가스의 단면을 보자. 치즈가 돈가스를 가득 채우다 못해 줄줄 흘러나온다. 이 모습을 보니뭇남성들도 충분히 설레고 남을 비주얼이다.


치즈돈가스에는 직접 만든 소스를 절반만 끼얹어 내온다. 일단 소스가 스며든 돈가스 맛을 보고, 나머지는 소스를 찍어서 고기맛을 느껴보는 것이 좋다.바삭거리는 튀김옷과 부드러운 고깃살, 그리고 치즈 맛이 한데 어우러져 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돈가스를 응용한 요리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츠동(돈가스덮밥)인데, 민들레에서 가츠동(7,500원)은 당당히 BEST메뉴로 자리잡고 있다.

가츠동은 일본식간장 쯔유와 양파를 조린 후 돈가스와 달걀을 넣고 살짝 데워 밥위에 얹은 요리다. 이곳의 가츠동은 극대화된 단맛과 짠맛을 줄여 은은한 달걀밥같은 느낌의 요리로 변화시켰다.

가츠동에 올라가는 돈가스지만 주문과 즉시 밑간하여 숙성한 국내산 생등심을 밀가루에 묻히고, 달걀옷, 빵가루를 차례대로 묻혀서 바로 튀겨내는 원칙을 준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분이 빠지거나 딱딱해질 일이 없다.

바삭한 돈가스와 달콤한 양파절임, 달걀, 밥을 한 수저에 얹어서 먹고나니 BEST메뉴로 왜 선정했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돈가스와 밥만 먹었을 때 컥컥~ 목이 맥혔던 기억이 있다면, 해물우동(6,500원)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해물우동이라기엔 새우와 홍합이 해산물의 전부이지만 다시마, 가스오부시 등을 넣어 만든 국물은 해물육수 특유의 깔끔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거기에 큼지막한 표고버섯과 쫄깃한 우동면발의 푸짐함에 높은 점수를 준다.


바삭바삭하게 씹히는 튀김옷, 튀김옷속에 숨어있는 부드러운 식감, 그 맛을 배가 시키는 소스. 그 맛을 못잊어 누군가는 생애 마지막 음식으로 돈가스를 꼽기도 한다.

돈가스는 그정도로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음식이고,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음식이다. 8월의 마지막 외식 메뉴로 돈가스를 선택해보는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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