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더니

커다란 갈빗대가 탕 속에 풍덩~

맛집가마솥대왕갈비탕

가을이 저만치 달아나고 있다. 다급해진 마음에 오방색을 닮은 단풍과 자연 속에서 우주의 기운을 느끼려 했으나... 세차게 부는 찬바람에 영혼이 탈출 되어 돌아왔다.

가을은 이미 소재파악이 안 될 만큼 달아났고, 헛헛한 찬공기만이 텅 빈 내 위장을 차지했다. 이럴 땐 무엇으로 위로 받아야 할까.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대왕으로!

불금이 되면 광주 흥부자들이 순례하듯 모여드는 성지, 상무지구엔 보통이 아닌 갈비탕집이 있다. 이름부터 ‘대왕’갈비탕이다. 마음이 옹졸한 나는 무엇이든 ‘킹’, ‘왕’, ‘짱’이 들어가면 일단 설렌다. 식당 이름 우왕굳.

넉넉한 주차장에 나의 애마를 세워 둔 채 안으로 들어선다. 현관보다 내부가 높아 순간 신발을 벗어야 하는 줄 알고 흠칫했다. 다행이 ‘신발을 신고 들어오라’는 메시지가 보인다.

내부는 특출한 것 없이, 보통의 갈비탕집 같다. 아이를 모시고 온 부부부터, 홀로 속을 채우러 오신 할아버지까지. 홀은 다양한 손님들로 가득했다.

이제 눈을 들어 메뉴판을 보자. 왕갈비탕부터 곰탕, 도가니탕, 육개장, 전골과 갈비찜까지! 소고기로 끓일 수 있는 거의 모든 메뉴가 있는 듯하다. 그중에서 우리는 왕갈비탕(특 14,000원), 영양도가니탕(12,000원), 만두(5,000원)를 골랐다.

여기는 기본찬부터 대왕스럽다. 기본찬 접시가 손바닥보다 크고, 종류도 4가지나 된다. 배추김치, 무김치, 어묵, 그리고 볶은김치도 보인다.

본래 국밥집과 갈비탕집은 김치가 맛나야 입소문을 타는 법. 오늘만큼은 나도 심영순 할머니가 되어 한식대첩처럼 평가해본다. 음. 아삭함 괜찮고. 맵기도 적당하고. 이만하면 통(通)이로구나!

조선시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요리책 「시의전서」엔, 갈비탕이 19세기 말 궁중연회 상차림에 처음 등장했다고 적혀 있다. 소 갈빗대를 5~6cm씩 쑤걱쑤걱 큼지막하게 잘라 뚝배기에 풍덩 넣어 내어주니, 갈비뼈처럼 꼿꼿한 양반들이 그리 좋아했다 한다.

저 멀리, 뚝배기 위로 모습을 슬몃 내민 갈비뼈들이 다가온다. 과연, 조선의 양반들이 감탄했을 법한 미관(味觀)이 내 눈앞에 비춰졌다.

손가락을 쫙 펴 갈빗대 크기를 대어봤다. 엄지와 약지가 최대한 멀어져야 그 크기에 닿는다. 대왕이란 간판명이 옳았다!

갈빗대 하나를 힘겹게 들어 고기를 잘라낸다. 뼈에 붙어 생육한 고기가 많아 떼어 내는 데도 한 나절이다.

고기엔 지방과 살코기가 적절히 섞여 있다. 야들야들하니 씹는 재미 부드러워 좋다. 어떤 갈비탕집은 그 고기가 타이어처럼 질긴 곳도 있던데, 여기 고기는 국물과 함께 쑥 넘어간다.

와사비장이란 동반자가 있으니 질릴 틈도 없다. 고소하고 기름진 국물 맛은 파 덕분에 담백했고, 간도 세지 않다.


다음은 도가니탕을 흡수할 차례. 이 맛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갈비탕과 곰탕을 적절히 섞은 맛이라 할 수 있겠다.

갈비탕의 살짝 애간장을 태우는 새침한 맛과, 곰탕의 진득한 맛이 동시에 있다.

소무릎연골 부위인 도가니는 푹 고우면 쫀득하고 입에 척척 감긴다. 비싼 재료라 아무 데나 막 넣을 순 없기에 고급으로 치는 영양식이다. 영양도가니탕엔 이 쫀득한 도가니가 잔뜩 들었다.


만약 도가니만 계속 먹다가 느끼함이 문을 두드린다면, 동행자의 갈비탕 고기와 물물교환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둘의 궁합이 아주 좋다.

대왕갈비탕에 왔으니 우리도 위대(胃大)해지고자, 만두도 주문했다. 윤기 나는 만두피를 크게 한 입 앙 베어 무니 꽉 찬 속과 육즙이 터져 나온다.


차별화된 맛은 아니지만, 국물의 별미로는 부족할 데 없다. 갈비탕과 함께 할 좋은 친구를 찾는다면, 만두도 꼭 주문해보시라.

유교사상에 따르면 밥은 음(陰)이요, 고깃국은 양(陽)으로 둘이 함께하면 하나의 우주가 완성된단다. 오늘 우리는 음양오행이 조화를 이룬 소우주를 몸 안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래서 그럴까? 갑작스레 불어 닥친 찬바람에도 내 안은 왠지 든든해졌다. 여러 모로 헛헛한 청춘들, 모두 우주의 기운 한 그릇쯤 말아 드셔버리고 힘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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